문학 10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10장)

📖 10장. 다시, 연둣빛5월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면, 나는 다시 연둣빛을 떠올린다. 연둣빛은 계절의 시작점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색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색이기도 하다.연둣빛은 완전히 피어나지 않은 생명의 색이다. 아직 덜 자란, 그래서 더욱 여린. 그 여림 속에 나는 나의 마음을 비추곤 한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도 다시 연둣빛처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살아갈 용기삶은 때로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무엇인가, 죽음은 끝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그 질문들에 완벽한 대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담담히 이별하고, 나의 삶을 스스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연둣빛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다시 살아갈..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9장)

📖 9장. 봄의 끝에서5월의 끝자락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조금 조용해진다. 만물이 피어나고, 햇살이 따뜻하며, 세상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계절의 끝에서 나는 문득 고요해진다.그건 어쩌면 ‘끝’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꽃은 곧 지고, 초록은 짙어지고,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찬란함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 채움 뒤에 오는 비움.🌸 어머니와 함께 했던 봄날들나는 유독 봄이 되면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함께 들렀던 시장길, 벚꽃이 날리는 거리를 걸으며 나눴던 소소한 이야기들, 어린 시절 교회 마당 한켠 벤치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그 오후.그 순간들은 이제 사진 속에도, 메모장에도 없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기..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8장)

📖 8장. 비우는 법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끊임없이 쌓는다. 경력과 명예, 재산과 관계, 기대와 기억까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쌓는 삶'보다 '비우는 삶'이 더 어렵고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비운다는 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단단한 믿음 위에 서야만 가능한 선택이다. 애써 움켜쥐었던 것을 내려놓고, 움켜쥐었던 감정을 풀어내고, 그 빈 자리에 평온과 자유를 들여놓는 것.🌬️ 가볍게 사는 연습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다.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가볍게 걷는 삶'이다. 무거운 채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내 마음을 짓누르..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7장)

📖 7장. 내가 진짜 원하는 삶어느 날, 조용한 산책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나는 모든 사람이 고통 없이, 굶주림 없이, 병마에서 해방된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어린 아이들이 배를 곪지 않아도 되고, 노인이 병상에서 외롭지 않아도 되는 세상. 누구도 사랑받지 못해 우는 일이 없고, 누구도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경쟁과 분열, 전쟁과 증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서로를 밀쳐내고, 나누기보단 먼저 차지하려 한다.🌍 내가 꿈꾸는 세상나는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아이든 노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병든 자든 건강한 자든 모두가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어머니는 ..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6장)

📖 6장. 죽음 이후의 삶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삶에 대한 나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우리는 기독교인이며, 가족 모두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특히 어머니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삶의 말기까지도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셨고, 병실에서도 조용히 찬송을 흥얼거리시곤 했다.그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반드시 슬픔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더 나은 세계로의 부르심. 그리스도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평안한 죽음의 그림자.✝️ 신앙과 이별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나는 오랫동안 혼자 성경을 붙들고 앉아 있었다. 평소엔 잘 펴보지 않던 시편과 요한복음을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었다.죽..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5장)

📖 5장. 여행 속의 나여행은 언제나 나에게 도피이자 회복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도망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은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식이었다.나는 지난 8년 동안 75개국을 여행했다. 그것도 패키지가 아닌 온전히 ‘나만의 자유여행’으로. 가이드도 없고, 한국어도 잘 통하지 않고, 심지어 주변에 한국인은 나 혼자인 그런 곳들을 찾아다녔다.왜였을까. 지금에야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매번 처음부터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던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땅,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공간. 그 낯설음 속에서만 나는 진짜 나의 감정, 본질, 상처, 그리고 사랑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마주치는 시간여행을 다니며 나는 자..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4장)

📖 4장. 가족이라는 이름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비로소 깨달았다.살아 있을 땐 늘 옆에 있는 존재였지만, 그 부재를 통해 나는 그들이 내 삶에서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가족은 말이 없어도 통하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이기도 하다.그 안에는 애정도, 상처도, 오래된 침묵도 함께 녹아 있다.🪞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들어릴 적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엄격했는지 몰랐다.형제들 중 나만 자주 혼나는 것 같았고, 괜히 밉기도 했다.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어머니는 나에게 가장 많은 기대를 걸었고, 그래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셨던 것 같다.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셨다.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묵묵히 ..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3장)

📖 3장. 사랑의 조건사랑은 언제나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프다.나는 오랫동안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라 믿어왔지만, 어머니의 부재를 마주하면서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어머니의 사랑은 늘 엄격했고,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3형제 중 나만을 유독 엄하게 대하던 그 마음을, 나는 오랜 시간 억울하게 받아들였고, 때로는 원망도 했다.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는 가장 많이 닮은 나에게 가장 많은 기대를 걸었던 건 아닐까.가장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그래서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던, 그런 복잡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다나이가 들수록, 나는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깨닫는다.말보다 행동이 먼저여야 했고, 감정보다 책임이 먼저 따라야 했던 시간들..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1장)

📖 1장. 연둣빛 그늘 아래서 나는 삶을 묻는다5월의 햇살은 어딘가 모르게 천천히 내려앉는다.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리게 반복되는 이 계절은나로 하여금 _'삶과 죽음 사이의 그 느린 틈'_을 응시하게 만든다.용인의 어느 공원. 연둣빛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면내가 살아 있다는 것과, 언젠가 반드시 사라질 존재라는 사실이한 장면처럼 겹쳐 보인다.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 경계에 서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한 도시의 처음과 끝을 걷다 보면,삶의 처음과 끝도 언뜻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계절의 기억어머니는 갑작스럽게, 혈액암 말기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곁을 떠나셨다.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조차 충분히 나누지 못한 이별이었다...

문학 2025.04.26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느린 계절 (2장)

📖 2장. 그리움 속의 풍경어느 날 문득, 기억 속 어머니의 마지막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 짧고, 너무 환했고, 너무 아팠다. 병실의 창가 너머로 스며들던 오후 햇살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슬픔이었다.사실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토록 따뜻한 손, 그토록 분주하던 발걸음, 그토록 익숙한 목소리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상상한다. 어머니가 다시 내 곁에 돌아온다면 어떤 말을 먼저 할까. 그리움은 때론 상상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리움은 반복된다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작은 냄새, 익숙한 음식, 우연히 들린 옛 노래 한 구절이 마치 타임머신처럼 나를 다시..

문학 2025.04.26